슈만(Schumann)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A Poet's Love)'은 가곡 레퍼토리의 정점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독일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Jonas Kaufmann)은 2020년 코로나 봉쇄 기간에 녹음한 이 음반에서 이 곡에 담긴 복잡한 감정의 이면을 깊이 파고듭니다. 카우프만의 감미로운 고음역은 사랑의 첫 설렘을 황홀하게 그려내는 초기 가곡들에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더하죠. 그러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때는, '나는 원망하지 않으리(Ich grolle nicht)'에서처럼 투박하고도 바리톤에 가까운 음색을 드러내며 냉혹한 환멸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Helmut Deutsch)는 특히 연가곡의 마지막 곡 '옛날의, 사악한 노래들(Die alten, bösen Lieder)'의 고통 어린 코다에서 절묘하고 섬세한 반주를 펼칩니다. 이 앨범에는 또 다른 슈만의 가곡 모음인 '케르너 가곡집(Kerner-Lieder)'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시인의 사랑'처럼 유기적으로 구성된 연가곡은 아니지만, 카우프만의 어두운 색채와 심연을 담은 해석 속에서 설득력 있는 울림을 선사하죠. 여기에 1994년 학생 시절에 공연한 '시인의 사랑' 중 여섯 곡이 보너스로 담겨 있어, 카우프만이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