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리히터
In A Landscape
앨범 · 클래식 크로스오버 · 2024
막스 리히터(Max Richter)의 최신 앨범 'In A Landscape' (2024)에는 미니멀리즘 음악을 향한 그의 사랑이 듬뿍 담겨있습니다. 리히터가 자신의 파트너이자 비주얼 아티스트인 율리아 마르(Yulia Mahr)와 함께 옥스퍼드셔 지역에 설립한 친환경 스튜디오에서 작곡하고 녹음한 앨범입니다. 현악 5중주, 그랜드 피아노, 해먼드 오르간, 미니무그뿐 아니라 테이프 딜레이, 보코더, 리버브 등으로 간결한 구성에 집중한 19개의 짧은 작품이 수록되었습니다. 앨범에서, 리히터가 작곡한 10곡은 'Life Study'라는 제목의 앰비언트 간주곡들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 곡들은 그의 세계를 포착하기 위해 평소 일상에서 녹음한 토막 음원으로 만든 것입니다. 리히터는 "앨범 제목인 'In A Landscape'는 두 가지 다른 뜻으로 들릴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적힌 그대로 '어떤 풍경 속'이라는 뜻일 수도 있고, 'inner landscape'라고 듣는다면 '내면의 풍경'이라는 의미도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앨범에서 제가 탐구한 것도 이런 양극성입니다. 외부와 내부, 일렉트로닉과 기악, 자연 세계에 대항하는 기술 세계 같은 거죠."
앨범 제목은 선구적인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가 1948년 에릭 사티(Erik Satie)에게 영감을 받아 만든 하프 혹은 피아노를 위한 독주곡에서 따왔습니다. 리히터는 이번 음반 전체에 걸쳐 자신에게 오랜 세월 영향을 준 작곡가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테리 라일리(Terry Riley)와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처럼 반복되는 음악 형식이 특징인 미국 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의 어법, 존 케이지가 탐구한 일상 속 소리의 아름다움, 그리고 바로크 음악의 영향도 드러나죠. 예를 들어 'And Some Will Fall'의 하모니에서는 바흐(Bach)의 화성, 'Late and Soon'에서는 퍼셀(Purcell)의 감성이 느껴집니다. 'Love Song'에서는 그가 무엇을 참조했는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곡의 바이올린 멜로디는 17세기 영국 작곡가 존 에클스(John Eccles)의 오페라를 인용한 것으로, 리히터의 음울한 피아노 반주가 더해지며 감정적 울림이 생깁니다. 슈베르트(Schubert) 음악의 흔적은 'Andante'에서 잘 나타납니다. 리히터는 슈베르트의 밝고 어두운 면모를 모두 담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슈베르트의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그를 그냥 놔둘 수가 없어요."
존 키츠, 앤 카슨, 피터 레드그로브 같은 시인들에 대한 리히터의 사랑도 앨범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윌리엄 워즈워스의 1802년 소네트에서 제목을 가져온 곡 'Late and Soon'이 그 예입니다. 산업혁명의 물질주의가 점점 만연하는 것을 한탄하는 이 소네트의 구절은 이렇습니다.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 late and soon/Getting and spending, we lay waste to our powers;/Little we see in Nature that is ours(세속의 일이 너무나 많다, 늦고 또 이르다/벌어들이고 써버리면서, 우리가 가진 힘들을 스스로 파괴해 버린다/우리가 가진 자연을 거의 보지 못한다)'. 그가 말합니다. "'아, 본질적으로 트위터, 그리고 우리 삶이 산만해진 것에 대한 이야기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중요한 시적 구성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저 제가 애정을 품고 있는 것들이 앨범에 담겨있고, 음악의 출발점으로 삼은 계기들이 존재할 뿐이죠. 무언가를 보고 좋아하게 될 때와 비슷해요.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그걸 탐구하고 끌어올리고 싶어지잖아요. 이 곡에서 이 구절들이 그런 작용을 한 겁니다."
리히터가 주변의 소리를 발견하고 이용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사운드는 리히터가 곳곳에 삽입한 'Life study' 트랙에 질감을 더하고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그의 자전적 서사를 살짝 엿보게 해줍니다. 스튜디오 주변 숲에서 녹음한 소리부터 그가 여행했던 도시의 소음까지 아우르는데, 마치 리히터의 삶을 되돌아보는 느낌을 주죠. "저는 걸어서 이곳저곳 탐험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 걸으며 포착한 것들이 많아요. 뉴욕 시내, 시드니, 베를린, 그리고 파리에서 수집한 것도 약간 있고, 또 여러 공항의 소리도 있죠. 집에서 녹음한 것도 있어요. 누군가는 피아노로 즉흥 연주를 하고, 그동안 다른 누군가는 요리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개에게 먹이를 주거나 하는, 보통 집에서의 생활을 녹음한 겁니다."
순간적이면서 잔잔한 이 간주 트랙들은 여러 면에서 사티의 음악이 가진 유쾌한 일시성을 생각나게 합니다. 또 리히터가 원래부터 여러 녹음 자료를 사용하곤 했다는 사실도 떠올리게 해주죠. 리히터의 이런 성향은 사회 정치적인 의식을 담은 과거 레코딩을 찾아보게 만듭니다. 그는 발칸반도의 코소보 분쟁을 다룬 'Max Richter: Memoryhouse' (2002), 그리고 2003년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는 'The Blue Notebooks' (2004)에서 사회적인 문제를 내비쳤죠. 리히터는 'In A Landscape'가 공식적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앨범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걸 인식하며 만든 거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매우 양극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특히, 온라인 공간은 아주 날카로운 독백들로 뒤덮여 있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서로 대화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창작을 통해 이질적인 요소들을 한 공간에 모으고자 시도하는 이 원칙이, 일종의 정치적인 스토리텔링이라고 봅니다. 아름다운 서사인 거죠."

